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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모델

제네시스로 현대차의 새로운 제네시스(기원)를 만들다 아시다시피 정주영 현대 초대회장의 자식 복은 많은 편이 아니다. 장남인 몽필은 젊은 시절 사고로 죽고, 자신이 현대그룹을 물려주려 했었던 5남 몽헌은 2002년 대북송금 비리로 엮여 자살을 했다. 4남 몽우는 우울증을 앓다가 음독 자살을 했다. 자신의 운은 만들어서까지 기적을 만들었던 정주영이지만, 자식들의 운은 천하의 그도 어찌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자식들이 일찍 죽게 된 탓일까, 정주영의 손자 사랑은 지긋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장남 몽필이 죽고서 차남 몽구의 자식인 의선은 정주영 회장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한다. 정씨 가문은 매일마다 아침을 함께하는 일종의 전통이 있었는데, 그 때 마다 정주영 회장은 장손 의선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고, 그 때 마다 “의선이 녀석은 나중에 요직에 앉혀라, 큰 인.. 더보기
에반젤리스트의 표본, 닉 우스터. 대중들에게 비교적으로 인지도가 낮았던 톰 브라운(Thom Browne)을 대중화 시키는데 기여한 인물을 꼽자면 국내에는 지드래곤이고 해외에는 닉 우스터 일거다. 국내에는 "꽃할배"정도로 알려져있지만, 이렇게 화제가 되기 전부터 닉 우스터는 미국 패션계에 꽤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물이었다. 톰 브라운 이전에도 바니스 뉴욕 백화점 구매 담당자로 패션업계에 입성한 후, 켈빈 클라인과 랄프 로렌에서 임원으로 지내면서 패션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닉 우스터가 대중에게 주목을 받았던 것은 그가 유명한 브랜드의 임원이기 때문이 아니라, 비교적으로 늙고 신체적 조건이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패션들을 소화한 사진들이 화제가 되어서다. 그저 옷을 사랑하고 스타일을 좋아했을 뿐인데, 그것이 화제가 되고 그 덕분에 .. 더보기
정주영과 이병철: 정주영의 자식농사 이야기를 시작하며 이들이 정부의 도움을 받아서 어느정도 사업을 했다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있다. 삼성과 현대는 국가에 기대서 비대한 성장을 했다. 그렇다고 이 두 명의 창업자를 과소평가 해서도 안된다고 본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병철과 정주영의 성격은 정 반대다. 그리고 이 두 분의 성공은 “성공하는데 모범답안은 없음”을 명확하게 시사한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아무리 삼성과 현대일지라도 정부가 자회사를 내놓으라면 내놨어야 했는데, 이에 대해서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의 반응은 그야말로 극과 극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자신이 일궈낸 자회사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는데도 평소처럼 출근하여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반대로 정주영 회장은 분해서 청와대까지 찾아갔다고. 신군부가 정권을 잡아서 어쩔.. 더보기
이병철을 가장 닮은 딸, 국내 최대 유통 제국을 세우다 이병철 삼성 초대회장의 성격과 리더십, 그리고 기업가적 판단력을 가장 닮았던 사람은 장남인 이맹희도, 차남인 이창희도, 삼남인 이건희도 아니었다고 한다. 이병철의 판박이 소리를 들었던 사람은 정작 이병철의 딸이었던 이명희였다. 아버지에게 잘 한 것도 있지만, 평소에 소심했던 이건희와 다르게 굉장히 사교성이 발달했고 여장부로써 배짱도 두둑했다. 이병철 초대 회장은 생전에 이명희가 남자였다면 삼성그룹을 이명희에게 줬을 것이라고 이야기 할 정도였다. 엄밀히 말해서 삼성그룹은 반도체를 밀어붙힌 이건희에게 돌아갔지만, 이병철 초대 회장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명희였다고 전해지는데.. 실제로 이병철 회장과 라운딩을 가장 많이 갔던 사람도 이명희라고 전해진다. 정주영, 김우중 처럼 기라성 같은 거인들과의 술.. 더보기
이병철에게 버림받은 장손, 식료품 상점을 국내 최대 생활기업으로 만들다. 혹자는 정주영 회장의 자식들이 대단하다고들 이야기한다. 이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 제계서열 10위권 안에 정주영의 자식이 둘이나 있다(2위 정몽구(현대 자동차 그룹)와 10위 정몽준(현대 중공업)). 뿐만 아니라 지금 여러분들이 아시는 현대 계열사들 대부분이 거의 독자 경영을 하고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다시 현대그룹을 통합 했을 때 자산규모는 삼성의 그것을 뛰어넘고도 남을 것이다. 현대그룹, 현대 자동차 그룹, 현대 중공업, 현대 백화점, 현대 산업개발은 지금 다 분리돼서 독자적으로 경영을 하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이병철 회장의 자식들을 위주로 다루느냐, 그 이유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병철 회장의 범-삼성가가 범-현대가의 자산규모를 앞지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주영 회장의.. 더보기
태종 이병철, 세종 이건희? 사람들은 흔히 태종 이방원의 최고 업적을 세종이라고 한다. 즉, 왕위 계승을 세종에게 한 것이 최고의 업적이라는 것이다. 자식 농사는 그만큼 해당 인물을 평가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이병철도 그렇다. 사실 이병철은 삼성을 대한민국 최고 기업으로 만들지 못했다. 당시엔 현대가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 기업이었다.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대한민국의 상징으로 만든 인물은 이병철 초대 회장의 셋 째 아들인 이건희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의 경영권을 물려받고서 선포한 ‘신경영’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니 생략하도록 하고. 당시의 삼성의 상황을 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삼성, 특히 삼성전자는, 일본의 소니나 캐논같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전자제품 기업들을 모방하는 수준의 회사였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화웨.. 더보기
이병철 이야기: 타고난 승부사 사실 사업과 도박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물론 사업은 조금 더 복잡한 프로세스가 있지만, 잘 되면 흥하고 망하면 빈털털이가 된다는 점에선 그 본질은 매우 흡사하다.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은 정주영 회장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경제를 일으킨 거인으로 기억되지만, 이병철 회장의 20대는 피폐했다. 정주영 회장은 무일푼으로 현대를 세웠지만, 본인은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던 탓일까. 20대의 이병철은 도박으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도박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이병철 회장이 이 때의 나날을 회고하며 한 말이 인상깊다: “오히려 이 때 도박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삼성이 있을 수 있었다. 이 세상에 헛된 시간이란 없다. 10년동안 낚시를 하더라도 그 시간동안 생각이란 것을 할거고, 이는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