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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고통

경제의 불편한 진실, 왜 우리는 저축을 하면 안되는가?

 

KDI, 코로나19로 올 성장률 0.2% 전망…양적완화 도입 강조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영향으로 글로벌 경기가 크게 위축됨에 따라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0.2%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경기 불확실성이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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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인정해야한다. 부의 불평등은 자생적으로 일어나는게 아니라,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더 심화되고 있다.

엄밀히 말해서 난 이제 시장주의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부의 불평등이 '순수 시장'의 자생적 작용에 의한 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여 시중은행에 돈을 풀면, 결국 이는 자산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우리가 2008년 모기지 사태때도 겪었듯 실물경제엔 즉각적인 반응이 오지 않아서 노동소득에만 의존하는 사람들은 자본소득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에 비해서 소득 수준에서의 격차가 벌어진다.

지금도 나스닥은 코로나 이전의 수치로 거의 돌아왔고, 넷플릭스를 비롯한 IT 신흥주들은 전고점을 돌파하고 있지만, 미국의 실업률은 '대공황 단계'라고 이야기 할 정도다. 14.7%니까 말이다.

임금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도 결국 다 여기에 있다. 돈을 풀어내기에 화폐의 가치는 계속해서 희석되는 반면 돈을 풀어내는 '행위'가 실물경제에 즉각적인 반응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임금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2008년도 이후로 미국 경제는 '늘 위기'라고 했다. 그런데 위기라고 하면서 나스닥은 전례없는 상승을 보여주었고, 자산의 가치는 2008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올랐다.

최근 10년간 나스닥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다. 

2008년도 이후로 나스닥은 5배가 올랐지만 임금은 그렇지 못하다. 물론 이렇게 단면적인 비교를 하는거 자체는 무의미하지만, 부의 불평등이 심화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사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이다. 버니 샌더스나 엘리자베스 워렌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회주의로 회귀를 할 것이냐, 아니면 오스트리아 학파처럼 중앙은행을 폐지할 것이냐.

난 딱히 둘 다 현답은 아니라고 본다. 구시대적 발상이랄지.

이제는 일반인들도 금융소득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밖에 이야기 할 수 있는게 없다. '자본주의(capitalism)'사회라는게 생겨난지 200년도 넘었는데 아직도 자본소득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거 자체부터가 넌센스인 것이다.

양적완화의 시대다. 시대를 거스를 수 없으면, 적어도 시대에 편승해서 살아갈 줄은 알아야한다.

 

사실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낳고 싶지 않은게, 내 다음 세대는 단순히 빈부격차를 넘어서서 빈부격차에 따른 유전격차, 지능격차도 생길거 같아서 내 아이에게 과연 충분히 살만한 부와 유전자와 지능을 물려줄 수 없다면 재생산을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라고 본다.

내가 양적완화의 세계라고 이야기 한 적 있다. 전 세계 모든 은행들이 돈을 풀어서 버블로 위기를 가린다. 기본소득의 시대다. 코로나로 거론된 기본소득은 이제 제도화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질 것이고, 민주주의 시스템 특성상 기본소득은 일부나마 제도화되어 정부의 예산은 더 확대될 것이다.

 

양적완화의 부작용이라고 한다면 빈부격차 증가에 있다. 양적완화로 뽑힌 돈은 가장 부자들에게 먼저 가서, 가장 가난한 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면 똑같은 500만원이라도 실질적 가치는 똑같은 500만원이 아닌셈. 부자들이 안그래도 돈도 많은데 소비도 더 유리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빈부격차는 양적완화와 규모와 비례하여 증가할 것이다.

바이오와 유전학이 발전하면서 돈이 많은 사람들은 더 질 좋은 유전자를 이식하려고 할 것이다. 반면, 돈이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겠지. 부유한 집안의 자식은 더 좋은 신체조건과, 더 좋은 지능, 더 막대한 부를 가지고 태어나게 될 것이며 이는 빈부격차를 넘어서 호모 사피엔스간에 초 격차를 만들게 될 것이다.

정부의 막대한 지출로 인한 빚은 우리 다음세대, 또 그 다음세대의 다음세대가 짊어질 몫이며 난 내 아들 딸에게 그런 불행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 물론 이 말도 내가 부자가 아닌 상태에서 죽었을 때에나 적용되는 말이지만.

중요한 것은 여러 방면으로 인간과 인간간의 격차가 생겨날 것이라는 말.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이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말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