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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만든 전체주의.

어쩌면 나는 공감능력이 결여되어있는 사이코패스 였는지도 모르겠다.

 

4월 16일, 그 날을 기억한다. 아이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행위를 강요하지 말라고 내가 페이스북에 올렸을 때, 그 글을 캡쳐해서 조리돌림하던 대학교 선배들을 기억한다.

 

나는 그 날에 추모하지 않고, 오히려 추모에 대한 강요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상적인 대학교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어떤 선배는 나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로 협박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죽은이들의 생명은 중요하지만, 정작 자기와 같은 학교를 다닐 한 후배의 삶은 중요하지 않았나보다.

 

신입생으로 막 대학교에 들어왔을 때, 나는 한국인 유학생들이 무서웠다. 동양인들이 집단으로 돌아다닐 때면 애써 그 무리들을 피해서 다녔다. 혹여나 해코지라도 당할까봐.

 

나에게 세월호는 억울한 죽음이었다. 아무런 잘못없는 아이들이 죽었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난 정말로 그게 전부였다.

 

여기에서 뭘 더 슬퍼해야 하는건지 정말로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기승전’정치’로 바꿔가는 사람들에 모멸감을 느낄 뿐이었다.

 

정부의 음모? 잠수함? 별로 와닿지 않았다. 나에겐 그냥 해상교통사고였다. 지금도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진실? 무엇이 진실인가. 박근혜 정권을 혐오하는 이들이 정권을 잡고 권력을 잡았다. 그럼에도 변한 건 없다. 해상교통사고다.

 

제작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날에도 행복하게 연애하고 웃으며 돌아다닌 사람들이 있음을 안다.

당연하다.

 

내 할아버지는 당신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까. 물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그 날, 온 세상이 같이 슬퍼해주길 바랬다. 누군가 이 순간에도 행복한게 미운 감정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내가 당신들에게 슬픔을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에겐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보다, 내 할아버지의 죽음이 100만배 1000만배는 더 슬펐다. 사람이란 그런거다. 나와 관련된 한 명의 죽음이. 나와 관련 없는 수 백의 죽음보다 더 슬픈 법이다.

 

내가 글을 쓰고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관련없는 이들은 죽어나가고 있을게다. 그럼에도 우리의 감정엔 별 다른 변화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랑 관련이 없으니까. 사람이란 그런거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나의 죽음, 내 주변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같이 슬퍼해야할 의무는 없다.

 

슬픔을 강요하고,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인간 쓰레기 취급하는 사회적 풍토. 이 자체가 위선이라고 본다. 죄송하다, 같이 슬퍼하지 못해서. 내가 딱 여기까지의 인간인 것을. 죽은 사람은 죽은대로, 산 사람은 또 산 대로 살아가야 한다. 내 주변 사람에게 하루라도 더 잘하는 것이, 어쩌면 세월호를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