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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념형 친일파. 윤치호와 박중양
    역사 = 기록 2020. 10. 5. 14:53

     

    을사오적 리스트

    '친일파'하면 생각나는 이완용은 사실 굉장히 기회주의적인 면모가 강했고. 이완용을 제외하더라도 을사오적으로 불리는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은 일본에 겁을 먹었거나 일본이 제공해줄 부귀영화 때문에 친일을 했다고 봐야한다. 뭐, 그런 인물들은 비판 받아야 마땅한 인물들이라고 본다. 을사오적이 대한민국을 팔아넘긴게 아니라, 아예 근본부터 다른 국가인 대한제국을 팔아넘긴 것이긴 하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개인의 이득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들이니 욕 먹어도 싸지.

    하지만 나름대로 신념형 친일파로 불리는 윤치호나 박중양의 경우엔 이를 다르게 봐야한다고 본다. 그리고 역사 교과서에서도 이들에 대해선 좀 다뤘음 좋겠다고 생각한다.

     

    신념형 친일파는 어떤 부류냐면. 단순히 일본제국이 주는 부귀영화 때문에 친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이유에서 일본을 지지하고 조선을 경멸헀던 부류를 말한다. 즉, 이들은 조선인들이 자주적으로 국가를 운영할 만큼 똑똑하지도, 유능하지도 않다고 봤고 차라리 그럴 능력이 되는 일본이 대신 통치해주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자들이라고 보면 된다.

    에모리 대학교 시절의 윤치호

    윤치호는 미국 에모리 대학교를 나온 인재로 대한제국에 귀국해서도 민주주의 사상과 서구사상을 전파하고 국민들을 계몽하기 위해서 노력한 계몽주의자였다. 그런데 웃긴건 정작 윤치호 본인은 민주주의를 옹호하여 참정권을 주장했지만, 이런 사상을 가장 반겨야할 민중들에게 배척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서 윤치호는 조선의 민중들을 혐오하기 시작하였다. 또 관직 생활(천안 군수)을 하면서 당시의 조선인들의 나태하고 게으른 모습을 보며 계몽에 대한 현타가 왔다고 한다.

     

    윤치호는 일본에 협력하면서도 일본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본인의 일기에 담았고, 일본을 최선이 아닌 차악의 형태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박중양은 윤치호 보다도 더 지독한 신념형 친일파였는데. 그는 일제시대 관직에 있을 때도 뇌물 한 푼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하며, 광복 이후에도 자신의 친일 신념을 굽히지 않는. 지독한 인물이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박중양도 처음부터 친일파는 아니었고. 젊은 시절엔 독립협회에 참여한 적도 있다. 그러다가 윤치호와 비슷하게 조선인들의 나태함과 이기적임, 게으름을 보다 참지 못하여 조국을 혐오하게 되고 백성의 권리를 지키지 못하는 국가에 충성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며 친일로 전향한다.

     

    해방 직후에는 본인이야말로 진짜 진성 친일파라며 일제시대에 고위직 관료를 하면서도 이미 많이 늙은 자기를 죽이고 나머지 젊은 친일파들은 차기 정부의 요직에 앉히라고 주장한다. 사실 이도 맞는 말인게 그 때 당시에 민주주의의 개념, 근대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은 친일을 했고, 친일을 통해서 고등교육을 받았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급작스럽게 변화하는 대한민국의 상황에 친일파들 만큼 그 변화를 적응할 수 있는 인물들은 없었을 것이다.

     

    막말로 서양문물에 적응은 커녕 접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을 단순히 친일파가 아니라는 이유로 기용할 수는 없는 것처럼. 사실 오늘날 친일파들의 후손이 잘 살고 있다면, 그 이유 역시 나름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여튼, 이완용과 을사오적을 혐오할 때 혐오하더라도 이러한 신념형 친일파들은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

     

    이들이 어떤 이유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친일로 전향했는지. 어떤 동기로 친일파가 되었는지. 그리고 이들을 비난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들을 비난할 만큼 대한제국은 올바른 국가였는지. 또,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을 언제까지 같은 국가처럼 볼 것인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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