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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모델

이병철에게 버림받은 장손, 식료품 상점을 국내 최대 생활기업으로 만들다.


혹자는 정주영 회장의 자식들이 대단하다고들 이야기한다. 이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 제계서열 10위권 안에 정주영의 자식이 둘이나 있다(2위 정몽구(현대 자동차 그룹)와 10위 정몽준(현대 중공업)). 뿐만 아니라 지금 여러분들이 아시는 현대 계열사들 대부분이 거의 독자 경영을 하고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다시 현대그룹을 통합 했을 때 자산규모는 삼성의 그것을 뛰어넘고도 남을 것이다. 현대그룹, 현대 자동차 그룹, 현대 중공업, 현대 백화점, 현대 산업개발은 지금 다 분리돼서 독자적으로 경영을 하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이병철 회장의 자식들을 위주로 다루느냐, 그 이유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병철 회장의 범-삼성가가 범-현대가의 자산규모를 앞지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주영 회장의 자녀들은 아직도 정주영 왕회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가 워낙 대단했기 때문도 있겠지만, 솔직히 이야기해서 정주영의 위상을 뛰어넘을 수 있는 2세 3세가 아직까진 없는게 슬픈 현실이다. 정주영이 회장으로 있을 때 ‘왕회장’이라 불리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일수도 있다.

하지만 삼성은 좀 많이 다르다. 개인적으로 이병철을 존경하지만 지금 범-삼성가엔 이병철의 흔적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찌 되었든 간에 지금의 삼성전자를 만들어 낸 것은 삼남 이건희고, 지금의 신세계를 만들어 낸 것은 막내 이명희고, 지금의 CJ를 만들어 낸 것은 이병철의 장손인 이재현이다. 물론, 이들이 각자만의 성공을 이뤄낸데엔 이병철의 교육과 사업기반이 있었겠지만, 이병철이 만든 삼성과 이들이 만들어내는 사업들은 성격적으로 느낌이 많이 다르다는 이야기다(그나마 비슷한게 신세계 그룹이다).

정주영 회장이나 이병철 회장이나 흥미로운 사실은, 장남에게 무조건적인 경영승계를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주영 회장은 5남 몽헌에게 경영권을 승계했고, 이병철 회장은 3남 건희에게 경영권을 승계했다. 물론 현대의 경영권은 결국 장남이나 마찬가지인 몽구에게 돌아갔지만 말이다. 사실 이병철 회장은 장남 맹희에게 경영권을 승계할까 생각도 했었다. 아무래도 장남이니까. 하지만 맹희는 이병철 회장과 다르게 너무나 다혈질이고 성격도 급했다. 어쩌면 맹희는 삼성가가 아니라 현대가에 어울리는 장남이었을지도 모른다.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승계 받은 3남 건희의 모습

이맹희의 성격적인 요소 말고도 이병철 회장이 3남 건희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발생하는데 삼성판 ‘왕자의 난’이 바로 그것이다. 차남 창희는 아버지를 경영권에서 끌어내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찾아가 아버지의 비리를 폭로한다. 하지만 박정희 같은 원칙주의자가 이런 패륜적 행위를 좋게 받아줄리가 있나. 이병철의 비리는 분명 나쁜 것이었지만 박정희의 눈엔 그런 아버지의 잘못을 일러 아버지를 엿먹이려는 창희가 더 괘씸했다. 그래서 박정희는 오히려 이병철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게 되고 이병철은 몹씨 분노해 차남 창희를 호적에서 파버리게 된다.

문제는 이 ‘왕자의 난’에 차남 창희만 인볼브 되어있던게 아니라는 것. 장남 맹희도 있었다. 이 사건은 이병철 회장을 분노하게 만드는데 충분했고, 마침 반도체 사업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던 건희가 열심히 치고 올라오고 있었기에 건희에게 경영권을 승계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병철 회장은 장남 맹희에게 ‘제일제당’을 줬다. 그가 적극적으로 ‘왕자의 난’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도 있을 것이고, 그래도 이병철 가문의 장남이라는 점도 감안해서 아버지로써 최소한의 도리를 다 한 것으로 보인다. 맹희가 제일제당을 받았을 때 제일제당의 매출은 2조원 정도였다. 이맹희 회장이 잘 한 것이 있다면 재빠르게 자신의 아들인 재현에게 경영권을 승계했다는 점일거다. 이재현은 정말로 탁월한 경영가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맹희 회장이 제일제당을 받았을 당시에 제일제당은 일개 식료품 회사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제일제당을 27조원의 대기업으로 키운 사람은 재현이다. 대략 13배의 성장이다. 지금 CJ는 여러분이 아시는 Mnet, CJ E&M, CJ대한통운, 올리브영, 투썸플레이스, CGV, CJ홈쇼핑 등 우리의 일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업체들을 가지고 있는 거대 생활 기업이다.

 


특히 제일제당과 CJ대한통운 , 그리고 CJ홈쇼핑, CJ E&M과 CGV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 이는 산업의 수직계열화(Vertical Integration)에 성공한 것으로, 생산부터 유통까지 모든 과정을 CJ가 직접 관리 감독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당연히 가격적으로도 저렴하고 훨씬 더 효율적인 경영이 가능하다. 심지어 CJ는 생산부터 유통까지가 아니라, ‘생산(제일제당, CJE&M)부터 유통(CJ대한통운, CGV) 그리고 판매(CJ홈쇼핑, CGV극장 CGV채널)’까지 도맡아서 하고있다. 엄청나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많은 전문가들은 CJ가 식품, 유통, 엔터, 생활 부분에서 만큼은 삼성 못지않은 위용을 뽐내고 있다고 한다.

 

오스카 상 수상에 빛나는 기생충도 사실 CJ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왼쪽은 봉준호 감독 오른쪽은 CJ의 이미경 부회장(이병철 회장의 손녀)

특히 이재현 회장은 2020년까지 매출 100조원 달성이라는 ‘그레이트 CJ’와 3개 이상의 부분에서 세계 1위 기업이 되겠다는 ‘월드 베스트 CJ’를 사내 슬로건으로 만들어서 미국과 유럽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방탄 소년단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제3의 한류열풍이 CJ에겐 천운일 수 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CJ는 K-문화를 세계에 알린다는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재벌들을 생각하면 워낙 상속받은 재산이 막대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많은 회사들이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몰락하는 것을 보면, 이병철 회장의 범-삼성가는 정말 대단하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물려준 경영권을 지켜내는데 성공한 것 뿐만 아니라 자식들, 손주들 모두가 초대 회장이 물려줬을 때 기준으로 10배 이상 키워냈다.

현재의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하루에 한 번은 무조건 삼성그룹, CJ그룹, 신세계 그룹의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는 오늘도 갤럭시를 쓰거나 삼성 노트북 또는 삼성의 가전제품을 쓸 것이고, CJ택배를 받거나 CGV에서 영화를 볼 것이고, 신세계 백화점이나 e마트에서 쇼핑을 할 것이다. 범-삼성가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에 녹아있다. 맏형 삼성그룹이 글로벌 최고의 회사로 도약한 만큼 동생 그룹들인 CJ와 신세계도 한국인들의 삶 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의 삶에 녹아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