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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모델

태종 이병철, 세종 이건희?

사람들은 흔히 태종 이방원의 최고 업적을 세종이라고 한다. 즉, 왕위 계승을 세종에게 한 것이 최고의 업적이라는 것이다.

자식 농사는 그만큼 해당 인물을 평가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이병철도 그렇다. 사실 이병철은 삼성을 대한민국 최고 기업으로 만들지 못했다. 당시엔 현대가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 기업이었다.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대한민국의 상징으로 만든 인물은 이병철 초대 회장의 셋 째 아들인 이건희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의 경영권을 물려받고서 선포한 ‘신경영’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니 생략하도록 하고.

당시의 삼성의 상황을 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삼성, 특히 삼성전자는, 일본의 소니나 캐논같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전자제품 기업들을 모방하는 수준의 회사였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화웨이, 오포, 비보와 같은 중국계 전자제품 회사들이 삼성과 애플을 따라하는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단연 국내 핸드폰 판매량은 1위였다. 일종의 국뽕 마케팅도 한 몫 했다. 국내 1위라니, 삼성 임직원들에겐 이미 더 올라갈곳이 존재하지 않았다. 계속 이정도만 해도 되겠다 싶은거지.

그 때 이건희는 신경영을 선포했다. 자식과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라는 그의 선언에도, 임직원들은 좀처럼 노력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이건희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삼성이 만든 불량제품 500억원어치를 구미에 있는 삼성 운동장에 가져다 놓고 임직원들에게 하나 하나 부수라고 시킨 것.

 

신경영을 선포했던 당시의 이건희 회장의 모습.


부서진 불량기기들은 이내 화염속으로 던져졌다. 요즘 생각해보면 이게 무슨 광역 어그로 시전인가 하겠지만 이건희에겐 500억원을 지불한 일종의 ‘사원교육’ 따위의 것이었다.

신경영 선포에도 바뀔 거 같지 않았던 임직원들의 애티튜드는 화형식 이후로 바뀌기 시작한다. 삼성이 “양(Quantity)”이 아니라 “질(Quality)” 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 부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신경영에 대해서 백날 들어봐도 불량제품을 보고, 느끼지 않는 한 바뀌는 것은 없다. 이건희 회장은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정확한 해답을 제시한 것이다. 화형식 이후로 직원들은 정신이 바짝 들었을 것이다. 이 때 지불한 500억원이 지금은 수 십, 수 백 조원의 가치가 되어서 돌아왔으니, 현명한 투자가 아닐까.

 


사람들은 이건희 회장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원래부터 금수저였고, 아버지가 키워놓은 회사를 물려받은 거 밖에 더 있냐고 하지만. 사실 지금의 삼성은 이병철의 삼성이 아니라 이건희의 삼성이다. 이병철의 이미지는 삼성에 거의 남아있지 않을 정도다. 이건희가 삼성의 지휘봉을 잡지 않았더라면, 삼성은 대우와 같이 IMF라는 쓰나미에 같이 쓸려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건희를 쉽게 출세한 사람이라 보는 사람들은 이건희 만큼 치열하고 열심히 살았는지 모르겠다. 특히 마르크스 추종하시는 왼쪽 분들은 반성하시라.

당신들이 부의 재분배, 생산수단의 사회화 따위의 개 좆같은 소리할 때 이들은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부수고 만들고 하며 치열하게 시장에서 살아남았으니까.

원래 드라마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후속편은 졸작이기 마련인데, 이 역시 삼성가에는 통하지 않나보다. 이병철의 최고 업적은 이건희다.

심지어 잘 생겼다. 이런 글 써주면 삼성에서 후원해줬음 좋겠다. 하지만 그런거 없다. 하지만 궁금한 것은 이재용이 과연 정조가 될 수 있느냐이다. 이재용의 행보를 기대한다. 

 

태종 이병철과 세종 이건희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