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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 센스

패션 말고는 아무것도 몰랐던 바보, 이브 생 로랑.

21살에 그 유명한 크리스챤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가 됐고. 26살의 나이에 그의 이름을 딴 ‘YSL’ 이브 생로랑을 런칭했다. 그 이후로 그는 파리 패션의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 남자가 디자인 하는 여성패션. 더 자세하게 말하면 게이 남자가 디자인 하는 여성의 패션은 매번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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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추구하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벗기고, 처음으로 젠더리스(genderless)한 시도를 했던 디자이너다. 여성에게 입힌 턱시도인 ‘르 스모킹’은 그가 죽을 때까지 아끼던 작품이다.

 

르 스모킹 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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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로랑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다. 예술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수 백 벌의 옷을 탄생시키는 그의 모습에서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여러 남자들과 몸을 섞으며 마약을 하고 방황하는 그의 모습에서 친근감을 느끼기도 했다. 확실히 생로랑이 동성애자였기에 패션에서 과감한 시도들을 했으리라 본다. 본인부터 남자이지만, 사회가 정의하는 남성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기에 애초에 정해진 성별에 따른 이미지는 허구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게 내놓은 젠더리스 패션은 지금의 패션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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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패션도 결국, 생로랑이 내놓은 남자의 패션에서 비롯되었다. 생로랑이 락시크의 창시자로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지금 봐도 생로랑 남자 부츠에 하이힐에서나 볼 수 있는 굽이 있는등 생로랑은 언제나 젠더의 벽을 허물어왔다. 그래서 그가 오랫동안 페미니스트들의 지지를 받아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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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이브 생로랑은 젠더리스를 단순히 사상이 아닌 패션으로 보여주었고. 그 패션으로 파리를 비롯한 전 세계를 리드하면서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입증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였다. 백날 LGBT든 페미니스트 담론을 듣는 것 보다 생로랑의 일대기를 한 번 보고 생로랑이란 브랜드가 수십년간 고집했던 철학을 그 패션으로 느껴보는것이 그들의 담론을 이해하기 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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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그 패션 브랜드를 좋아하고, 입는 사람이라면 그 패션이 가진 철학과 그 패션을 창조한 사람에 대한 일대기를 감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생로랑의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만족스러운 감상이었다